집값보다 먼저 흔들리는 것들이 있다
경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단연 ‘부동산’이다. 집값이 오르느냐 내리느냐에 따라 자산이 늘었다, 줄었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하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은 부동산 뉴스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집값이 안정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삶이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자산이 집 하나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매일 접하는 것은 주택 가격이 아니라 생활비다. 자동차 유지비, 가전 교체 비용, 보험료, 교육비, 의료비 같은 요소들은 통계 속 자산이 아니라 생활 속 자산에 해당한다. 이 생활 자산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부동산 가격과 무관하게 삶의 안정성은 빠르게 무너진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자산이라고 믿어왔지만, 실제로는 가장 먼저 가치가 붕괴되고 있는 생활 자산들을 살펴본다. 부동산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들을 이해해야, 지금의 경제 불안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자동차와 가전은 더 이상 ‘보유 자산’이 아니다
과거에는 자동차와 가전제품이 분명한 자산으로 인식되었다. 자동차는 이동의 자유이자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고, 가전은 한 번 구매하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내구재였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가전과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산층의 기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자동차는 자산이라기보다 지속적으로 비용을 발생시키는 소비재에 가깝다. 차량 가격은 물론이고 보험료, 세금, 유지비, 수리비까지 고려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는 줄고 부담은 커진다. 중고차 가격은 빠르게 하락하고, 기술 변화 속도는 기존 차량의 가치를 더욱 빠르게 소모시킨다.
가전제품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한 번 사면 10년 이상 쓰던 제품들이 이제는 몇 년 만에 교체 대상이 된다. 고장이 잦아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기술 변화와 서비스 환경이 빠르게 바뀌면서 ‘정상 사용’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스마트 기능, 연동 서비스, 소프트웨어 지원 종료 등은 가전의 물리적 수명과 무관하게 가치를 떨어뜨린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와 가전은 더 이상 자산 축적의 수단이 아니라, 고정비와 감가상각의 원천이 된다. 문제는 많은 가계가 여전히 이들을 자산으로 인식하고 소비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자산이라고 믿고 구매했지만, 실제로는 매달 비용을 잠식하는 구조 속에 들어가는 셈이다.
보험·교육·의료는 자산이 아니라 ‘미래 비용 선납’이 되고 있다
보험과 교육, 의료는 전통적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겨졌다. 보험은 위험에 대비하는 안전망이고, 교육은 소득을 높이는 자산이며, 의료는 건강이라는 가장 중요한 자산을 지키는 수단이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지금의 지출이 미래의 안정을 만든다’는 믿음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영역들이 점점 미래 비용을 앞당겨 지불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보험료는 해마다 오르지만, 보장은 복잡해지고 체감 효용은 낮아진다. 가입자는 불안 때문에 보험을 유지하지만, 실제로 자산이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오히려 매달 빠져나가는 비용으로 체감 소득을 갉아먹는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사교육비는 자산 투자라기보다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한 방어 비용에 가깝다. 교육을 통해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은 약해졌지만, 교육을 포기했을 때의 불안은 더 커졌다. 그 결과 교육비는 줄이기 어려운 고정비로 자리 잡았고, 자산 축적의 여력을 크게 제한한다.
의료비 또한 고령화와 의료 기술 발전 속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지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고, 이는 곧 생활 자산의 소모로 이어진다. 이 세 영역은 여전히 ‘자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가계의 현금 흐름을 압박하는 구조적 비용이 되고 있다.
생활 자산의 붕괴는 ‘안정감’을 가장 먼저 무너뜨린다
생활 자산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이다. 집값이 조금 오르내리는 것보다, 자동차 수리비나 보험료 인상 같은 생활 비용의 변화가 훨씬 직접적으로 체감된다. 이는 생활 자산이 일상의 안전망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생활 자산이 안정적일 때 사람들은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지출이 발생해도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일정 수준의 소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자산들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모든 선택에 불안을 느낀다. 소비는 계산적이 되고, 지출은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자산의 존재 여부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집이 있더라도 생활 자산이 불안정하면 삶의 질은 빠르게 떨어진다. 반대로 부동산이 없어도 생활 자산이 안정적이면 일정 수준의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자산의 본질이 ‘가격’이 아니라 ‘생활을 지탱하는 힘’에 있음을 보여준다.
생활 자산의 붕괴는 결국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진다. 중산층이란 많은 자산을 가진 계층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그 예측 가능성을 지탱하던 생활 자산들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더 이상 중산층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오랫동안 자산을 집과 금융 상품으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실제 삶을 지탱하는 것은 자동차, 가전, 보험, 교육, 의료 같은 생활 자산이다. 이 자산들이 먼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현재의 경제 불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부동산보다 먼저 무너지는 생활 자산을 들여다보는 것은, 숫자보다 체감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체감 속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경제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