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줄었다는데, 왜 주변은 더 힘들어질까
뉴스와 정부 발표를 보면 빈곤율은 관리되고 있고, 고용 지표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공식 통계만 놓고 보면 사회는 천천히나마 개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풍경은 다르다. 주변에는 일하고 있음에도 생활이 불안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받을 수도 없는 상태에 놓인 이들이 많다. 이 괴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문제는 가난의 모습이 바뀌었지만, 통계의 기준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빈곤은 실업이나 무소득 상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일정한 소득이 있고, 형식적으로는 ‘중산층 이하’ 혹은 ‘근로자’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생활이 무너진 상태인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흔히 ‘숨은 빈곤층’이라고 부른다.
숨은 빈곤층은 제도의 보호를 받기에는 소득이 조금 높고, 시장에서 스스로 살아남기에는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 글에서는 왜 이들이 통계에서 보이지 않는지, 그리고 어떤 구조 속에서 가난이 고착되는지를 살펴본다.

소득 기준만으로는 가난을 설명할 수 없다
정부 통계에서 빈곤을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소득이다. 일정 소득 이하일 경우 빈곤층으로 분류되고, 그에 따라 각종 지원과 복지 정책이 설계된다. 하지만 이 기준은 현대 사회의 가계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첫째, 소득은 있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월급이나 수입이 기준선을 조금 넘는다는 이유로 빈곤층에서 제외되지만, 월세·관리비·보험료·대출 상환 같은 고정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통계상으로는 빈곤층이 아니지만, 체감은 생계형 빈곤에 가깝다.
둘째, 소득의 안정성이 고려되지 않는다. 프리랜서,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는 월별 소득 변동성이 크다. 특정 달에는 기준을 넘지만, 다음 달에는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통계는 보통 일정 기간의 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불안정성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사라진다.
셋째, 가구 구조와 부양 부담이 반영되지 않는다. 같은 소득이라도 1인 가구와 부양 가족이 있는 가구의 체감은 전혀 다르다. 특히 돌봄 비용이나 교육비 부담이 있는 가구는 소득 대비 생활 여력이 급격히 줄어든다. 하지만 통계는 이 차이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이렇게 소득 중심의 기준은 현실의 빈곤을 과소평가한다. 그 결과 실제로는 취약한 상태에 놓인 많은 사람들이 제도의 보호 밖에 머무르게 된다.
일하고 있지만 가난한 ‘근로 빈곤층’의 확산
숨은 빈곤층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은 일하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 즉 근로 빈곤층이다. 이들은 실업 상태가 아니고, 사회적으로는 ‘자립한 성인’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이 생활비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다.
근로 빈곤층의 문제는 단순히 임금이 낮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노동의 대가가 생활 구조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거비, 교통비, 식비 같은 필수 지출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일정 소득 이하의 노동은 생존을 유지하는 데에만 쓰인다. 이 상태에서는 저축도, 자산 형성도 불가능하다.
특히 이들은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일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래도 소득이 있지 않느냐”는 시선을 받는다.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를 가난이라고 규정하기를 주저한다. 이 심리적 장벽은 지원 제도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또한 근로 빈곤층은 과로와 불안정성을 동시에 겪는다.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고, 그 결과 건강과 삶의 질이 악화된다. 하지만 이 비용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숫자상으로는 고용 상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 위험은 가려진다.
이렇게 근로 빈곤층은 통계 속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사회 전반의 피로와 불안을 키우는 중요한 집단으로 존재한다.
복지 사각지대가 ‘가난의 고착’을 만든다
숨은 빈곤층이 가장 취약한 이유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소득이 기준보다 조금 높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실제 생활 여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 경계선에 걸린 사람들은 “조금만 더 가난했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다.
이 사각지대는 단순한 제도 미비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복지는 명확한 기준을 필요로 하지만, 현실의 삶은 연속적이다. 그 사이에 낀 사람들은 제도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이들은 위기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
위기가 반복되면 가난은 고착된다. 갑작스러운 의료비, 실직, 가족 문제 같은 사건 하나만으로도 생활은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는 회복할 수단이 없다. 이때 숨은 빈곤층은 빠르게 공식 빈곤층으로 이동하거나, 장기간 불안정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사회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드러난 빈곤만이 문제로 인식되고, 보이지 않는 빈곤은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진다. 이 구조 속에서 숨은 빈곤층은 계속해서 늘어나지만, 논의의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다.
마무리하며
숨은 빈곤층은 특별한 소수가 아니다. 일정한 소득이 있고, 일하고 있으며, 겉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이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빈곤이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측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가난을 이해하려면 숫자보다 구조를 봐야 한다. 숨은 빈곤층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현재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의 실체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 문제를 개인의 실패로 남겨두지 않는 것이, 다음 단계의 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