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회복을 말하는데, 왜 우리는 더 불안할까
경제 뉴스를 보다 보면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고용 지표는 개선됐다고 하고, 성장률은 예상보다 높다고 말한다. 물가도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뉴스를 접한 뒤에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반응이 뒤따른다.
이 괴리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 뉴스가 거짓이어서도 아니고, 사람들이 괜히 비관적이어서도 아니다. 문제는 경제 뉴스가 설명하는 세계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뉴스는 ‘평균의 경제’를 말하지만, 개인은 ‘자신의 생활’을 산다.
이 글에서는 왜 경제 뉴스가 체감과 다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이 괴리가 반복되는 구조적 이유를 살펴본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숫자를 믿느냐 불신하느냐가 아니라, 그 숫자가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를 아는 것이다.

경제 지표는 ‘평균’을 말하고, 체감은 ‘경계’를 느낀다
경제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개념은 평균이다. 평균 성장률, 평균 임금 상승률, 평균 물가 상승률 같은 수치들이 경제의 상태를 설명한다. 이 수치들은 정책 판단과 거시 분석에는 유용하지만, 개인의 삶을 설명하기에는 본질적인 한계를 가진다.
평균은 분포를 가린다. 일부 계층의 큰 개선이 전체 평균을 끌어올릴 수 있고, 다수의 소폭 악화는 평균 속에 묻힐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위 소득자의 임금이 크게 오르면 평균 임금은 상승한다. 하지만 다수의 중·하위 계층이 체감하는 삶은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
체감 경제는 평균이 아니라 경계선에서 발생한다. 월급으로 고정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예상치 못한 지출을 버틸 수 있는지, 다음 달이 불안하지 않은지가 체감의 기준이다. 이 기준은 평균값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또한 체감은 비대칭적으로 반응한다. 소득이 조금 늘어나는 것보다, 지출이 조금 늘어나는 것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물가가 1% 오르면 체감은 5%처럼 느껴지지만, 소득이 1% 오르면 체감은 거의 없다. 이 심리적 구조 때문에 뉴스 속 ‘개선’은 현실에서 잘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경제 뉴스는 틀리지 않았지만, 우리가 사는 자리와는 다른 위치에서 작성된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뉴스와 자신의 삶 중 하나를 부정하게 된다.
뉴스는 ‘흐름’을 말하고, 체감은 ‘고정비’를 느낀다
경제 뉴스는 변화의 방향을 설명한다. 금리가 오르고 내리는 흐름, 물가 상승률의 둔화, 경기 회복 신호 같은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개인의 체감은 변화보다 고정된 구조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월세, 관리비, 보험료, 교육비 같은 고정비다. 이 비용들은 한 번 오르면 잘 내려가지 않는다. 경제 뉴스에서 “물가 상승률이 둔화됐다”고 말해도, 이미 오른 비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체감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특히 고정비는 소득과 달리 협상이나 조정이 어렵다. 월급은 회사와 협상해야 하고, 인상은 제한적이지만, 고정비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이 구조 속에서 뉴스 속 변화는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또한 뉴스는 단기적인 지표 변화를 강조하지만, 가계는 장기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 대출 상환, 교육비 계획, 노후 준비 같은 요소들은 단기간의 지표 개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앞으로 괜찮아질 것”이라는 뉴스보다 “지금 버틸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느낀다.
이 때문에 뉴스가 긍정적인 톤일수록, 체감과의 괴리는 오히려 커진다. 변화의 방향이 아니라, 변화가 내 삶에 언제 어떻게 도달하는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경제 뉴스는 ‘정책의 언어’이고, 체감은 ‘생활의 언어’다
경제 뉴스는 기본적으로 정책과 시장의 언어로 쓰인다. GDP, 금리, 고용률 같은 지표는 국가 단위에서 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다. 하지만 개인의 삶은 이 언어로 직접 번역되지 않는다.
정책은 전체를 대상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개인은 각자의 위치에서 정책을 경험한다. 금리 인하는 대출이 있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체감되지 않는다. 고용 지표 개선은 취업한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고, 불안정 노동자에게는 실감이 없다.
또한 정책 효과는 시간차를 두고 나타난다. 뉴스는 지금의 결정을 말하지만, 체감은 몇 달 혹은 몇 년 뒤에야 도달한다. 이 시간차 속에서 사람들은 “뉴스는 좋아지는데 나는 왜 그대로인가”라는 혼란을 겪는다.
이 괴리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경제 뉴스 자체를 불신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뉴스가 아니라 번역의 실패다. 정책의 언어가 생활의 언어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숫자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내 삶에 어떤 경로로 연결되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 연결 고리를 설명하지 못할 때, 경제 뉴스는 언제나 체감과 어긋날 수밖에 없다.
마무리하며
경제 뉴스가 체감과 다른 이유는 우리가 틀렸기 때문도, 뉴스가 거짓이기 때문도 아니다. 기준이 다르고, 위치가 다르며,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평균과 고정비, 흐름과 구조, 정책과 생활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괴리는 계속 반복된다.
중요한 것은 뉴스에 분노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를 체감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 순간부터 경제는 더 이상 멀고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설명하는 도구가 된다.